안녕하세요. 하윤상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 자리까지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여정들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제가 해왔던 고민들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함께 나누고 또 도움과 기도를 요청드리고자 이 글을 적습니다. 계속 제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길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인내해주셔서 읽어주시고, 또 생각날 때마다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기울어진 배, 다시 세우고야 말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어물쩡거리는 사이 단 한명도 건지지 못하고 수장되고 말았지만, 이 나라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2015년 12월 개인기도문 중)
#1. 7년 전 오늘이었겠죠. 다른 많은 분들처럼 아이들을 떠나보내고서 많이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슬퍼하다가, 그리고 분노하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이런저런 모임들을 조직했었습니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이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3년상을 치르듯 왜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는지 씨름해보자'는 여느 분의 말이 마음에 남아 그렇게 홀로 3년을 끙끙 씨름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3주기였던 2017년 4월 16일.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전할 편지 하나 적을 힘이 없어 좌절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 아이들의 죽음을 덧대어 보다 이내 깨달았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여전히 배 안에 있다는 것을요. 아이들을 놓친 그 자리가 기울어진 사회의 한 단면임을 알았고, 이후 또 그렇게 놓쳐야 했던 강남역과 구의역의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떠나보내고서야 사회 안에서 이 참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깨달았던 것은 결국 많은 프레임과 편견들을 걷어내고서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이 '목숨 걸고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지만 이 사회도 기울어져 있음을 감각한 것이 제게 주어진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게으른 학부생활로 인해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고민하던 중 기회를 얻어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고민을 지속할 시간과 여건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입학 당시에 연구소 창업을 꿈꾸면서 저의 기도문에 적었던 이야기는 https://anointer90.tistory.com/2 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3. 공공의 가치가 사회에 실제로 구현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행정학과였기에 지난 5년 간 충분히 연구라는 방법으로 고민을 이어나갔습니다. 배를 보수할만한 '방주'를 지어보자는 나름의 뜻을 품고 여러 대안들을 찾았고, 학부 마지막 학기 즈음에 발견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동성은 제게 방주의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의 고객문제를 저렇게 혁신적으로 풀어내고 해결하는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면, 사회문제들 또한 그런 역동성과 혁신성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역동성의 동력이 '플랫폼'에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플랫폼을 연구주제로 삼아 연구를 지속해나갔습니다.
#4. 연구과정에서 동시에 발견한 자리는 '시대전환'의 자리였습니다. 석사논문 주제로 포착했던 서울시의 택시산업과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충돌은 제게 시대와 시대가 충돌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구한말 조선의 조정 내에서 노론과 소론이 으르렁대던 사이 강화도에 나타난 거대한 이양선의 모습과 같이 말이죠. 공격 당하는 조선도 공격하는 이양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의 향방을 걱정하던 유길준의 모습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무르익으면서 점차 확신하게 되었던 듯 합니다. 그저 방주의 구조물 정도로 생각했던 스타트업 생태계와 디지털 전환이, 어쩌면 구한말에 마주했던 시대전환에 준하는 거대한 전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선조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세대는 빠르게 전환의 실체를 파악해야 했고 전환 한가운데에서 문명과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예상보다 기울어진 사회의 침몰속도는 훨씬 빨랐고, 이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은 훨씬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5. 대안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도움과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고향과 같던 교회 공동체에서 치열하게 씨름하던 가치와 정체성, 공동체와 전통의 계승에 대한 고민은 이 작업을 수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통해 저널리즘 영역에서 비슷한 결의 고민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씨름하는 분들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를 연구하면서 앞서 시민참여플랫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분투하는 많은 활동가분들을 알 수 있었고, 서울청년학회의 기획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회를 풀어내고 관점과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계시는 연구자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12년간 몸담았던 연세대학교와 3년 반동안 몸담았던 공공문제연구소가 품고 있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은 제게 방향타와 같았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서 그저 어떤 분노와 열정 밖에 없던 저의 손에 어떤 가능성과 방법들이 나열된 헐거운 기획안 하나가 쥐어진 듯 합니다. 이 내용을 서울청년학회 참여자분들과 간략하게나마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6. 반면 기획안이 구체화되어 가는 동안 제 안의 진정성과 열망은 저도 모르게 점점 사그라들기도 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가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아서 꽤 자주 주저앉고 좌절하고 도망쳤습니다. 장학사업의 도움을 얻어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자 그 안락함에 안주해 이 길을 가고자 했던 마음이 말라붙었다 느끼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저 말로만 그럴듯한 꿈을 꾸는 것과, 실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의 무게가 다름을 알아가면서 함부로 대안을 부르짖던 시기의 치기어림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7. 마음 속에 여전히 뜻을 품고 있었지만 일상에 파묻혀 조금은 단념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모교 교양학부에서 플랫폼 사회에 대해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만나게 된 20학번 신입생들과의 만남과 3월에 공론화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사회를 덮친 코로나19와 맞물려 제게 행동의 긴급성을 알려주었습니다. 플랫폼 교양강의가 갓 성인이 된 직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사회 앞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던 신입생들과 함께 사회의 미래와 대안을 함께 논의하면서 제가 준비해오던 것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전히 사회가 기울어져 있고 사회문제들은 방치되는 것을 넘어 변이, 진화되어 더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름의 기획안까지 손에 쥐게 된 상황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무어라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준비해오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긴급하게 사람들을 모아 '함트(XAMT)'라는 이름으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헐겁게 준비한 기획안을 실현해보고자 모임을 가졌습니다. 비록 수개월이 되지 않아 프로젝트는 해산했지만 그동안 함께 할 사람들, 여러 시도를 통해 축적된 콘텐츠들, 그리고 경험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누군가를 놓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경험이지만 저로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이상 이론의 뒤에 숨지 말고 계속해서 실패하고 계속해서 학습하면서 지금까지 그려온 기획안을 현실에 구현할 준비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8. 박사논문 프로포절이 끝난 직후 기회가 열려 10월에 수원에 집을 구할 수 있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실제 기획안을 현실로 풀어내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KT&G 상상스타트업캠프 5기에 선정되어 '연구협업플랫폼'이라는 아이템으로 소셜벤처 창업을 준비할 수 있었고 현재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신도림에 사무실을 얻고 실제 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습니다.